기념식수 

                                                                    이문재

 

 

 

형수가 죽었다

나는 그 아이들을 데리고 감자를 구워 소풍을 간다.

며칠 전에 내린 비로 개구리들은 땅의 얇은

천정을 열고 작년의 땅 위를 지나고 있다

아이들은 아직 그 사실을 모르고 있으므로

교외선 유리창에 좋아라고 매달려 있다.

나무들이 가지마다 가장 넓은 나뭇잎을 준비하러

분주하게 오르내린다

영혼은 온몸을 떠나 모래내 하늘을

출렁이고 출렁거리고 그 맑은 영혼의 갈피

갈피에서 삼월의 햇빛은 굴러 떨어진다.

아이들과 감자를 구워 먹으며 나는 일부러

어린왕자의 이야기며 안델센의 추운 바다며

모래사막에 사는 들개의 한살이를 말해 주었지만

너희들이 이 산자락 그 뿌리까지 뒤져본다 하여도

이 오후의 보물찾기는

또한 저문 강물을 건너야 하는 귀가길은

무슨 음악으로 어루만져 주어야 하는가

형수가 죽었다

아이들은 너무 크다고 마다 했지만

나는 너희 엄마를 닮은 은수원사시나무 한 그루를

너희들이 노래부르며

파놓은 푸른 구덩이에 묻는다.

교외선의 끝 철길은 햇빛

철철 흘러넘치는 구릉지대를 지나 노을로 이어지고

내 눈물 반대쪽으로

날개도 흔들지 않고 날아가는 것은

무한정 날아가고 있는 것은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께] 민음)

 

 

 

감상 : 감동 없이 읽기 어려운 시, 마른 눈물은 가슴 속에 고이는데... '아이들은 아직 그 사실을 모르고 있으므로' 시인은 '눈물 반대쪽으로' 애써 먼 하늘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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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돌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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