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김민부




女子大學校의 寄宿舍같은 거

그 가을날, 그 진구렁의

진구렁의

죽은 풀꽃 마르던 냄새 같은 거

오 - 肉身 밖으로 나가고 싶어

肉身 밖으로 나가고 싶어




감상 : 여자대학교의 기숙사는 금방이라도 쏟아져 나올 것 같은 바다이다.


'문학 > 좋은 한국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멧새소리 - 백석  (0) 2015.02.08
가책받은 얼굴로 - 장석남  (0) 2015.02.08
고사 1 - 조지훈  (0) 2015.02.08
아내 - 윤대현  (0) 2015.02.08
오래된 창문 - 윤대현  (0) 2015.02.08
Posted by 돌잠
,

멧새소리

                                     白石




처마끝에 明太를 말린다

明太는 꽁꽁 얼었다

明太는 길다랗고 파리한 물고긴데

꼬리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해는 저물고 날은 다 가고 별은 서러움에 차갑다

나도 길다랗고 파리한 明太다

門턱에 꽁꽁 얼어서

가슴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감상 : 명태를 얼렸다 말리면, 황태가 되는 것인가? 멧새소리가 황태를 만드는 것인가? 제목과 본문 사이에 겨울공간이 펼쳐져 있다.


'문학 > 좋은 한국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다 - 김민부  (0) 2015.02.08
가책받은 얼굴로 - 장석남  (0) 2015.02.08
고사 1 - 조지훈  (0) 2015.02.08
아내 - 윤대현  (0) 2015.02.08
오래된 창문 - 윤대현  (0) 2015.02.08
Posted by 돌잠
,

가책받은 얼굴로

                                        장석남




빗방울 떨어지며 후두둑 나는 읽는다

지운 文章처럼 나는

가책받은 얼굴로 빗속에 서 있다

대추나무의 

약한 열매들이 빨리 미련을 버리고

비에게 자리를 내준다

나와 자리를 바꾸자는,

잡풀에 떨어지는 빗물 소리

가책받은 목소리로 나는 이 순간 經을 읽는 것이다

빗물이 시커먼 눈을 뜨고 또랑으로 들어간다.


(현대시학 1991 10월)




감상 : 시인은 무언가, 자신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지 못한 모양이다. 그런 걸 표현하려 한 모양이다.


'문학 > 좋은 한국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다 - 김민부  (0) 2015.02.08
멧새소리 - 백석  (0) 2015.02.08
고사 1 - 조지훈  (0) 2015.02.08
아내 - 윤대현  (0) 2015.02.08
오래된 창문 - 윤대현  (0) 2015.02.08
Posted by 돌잠
,

古寺 1 

                                            조지훈




木魚를 두드리다

졸음에 겨워


고오운 상좌아이도

잠이 들었다


부처님은 말이 없이

웃으시는데


西域 萬里길

눈부신 노을 아래

모란이 진다




감상 : 상좌가 목어를 두드리며 논다. 바람이련가? 


'문학 > 좋은 한국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멧새소리 - 백석  (0) 2015.02.08
가책받은 얼굴로 - 장석남  (0) 2015.02.08
아내 - 윤대현  (0) 2015.02.08
오래된 창문 - 윤대현  (0) 2015.02.08
목수 장씨 - 이원백  (0) 2015.02.05
Posted by 돌잠
,

아내

                                                 윤대현




바람이 불면 외출한 아내가 걱정된다

외출한 아내의 헤어 스타일과

외출한 아내의 커피,

외출한 아내의 주소가 걱정된다

그리고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불자마자 또다시 바람이 분다

가난하게 그러나 가난하게도

가난은 아무도 모르게 가난하듯이


궁금하여라 외출한 아내와 아내의 외출

아내는 외출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아내의 외출


아내는 걱정스런 외출보다 걱정스럽지 않은 외출이 더 걱정된다고 말한다 나는 그 차이점을 생각하다가 둘 모두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한차례 바람이 분다

아내는 아내와 아내의 외출을 데리고

살아간다 가난하게 그러나 가난하게도


(현대시세계 1992 가을)




감상 : 가난 속에서 아름다운 아내를 잘 건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문학 > 좋은 한국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책받은 얼굴로 - 장석남  (0) 2015.02.08
고사 1 - 조지훈  (0) 2015.02.08
오래된 창문 - 윤대현  (0) 2015.02.08
목수 장씨 - 이원백  (0) 2015.02.05
교정 보는 여자 - 김기택  (0) 2015.02.05
Posted by 돌잠
,

오래된 창문

                                              윤대현




비는 비를 뿌리며 자지러지고

눈은 눈을 흩날리며 주저앉는다

단지 가끔씩 어수선하게

오래된 창문은 오래도록 흔들린다

누가 올 것 같다


오래도록 창문을 바라보고 있으니

창문이 오래된 창문이 되어

오래도록 흔들린다 적당한 창문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으니 오래된 창문이 되어

고스란히 흔들리고 있다 나는 흔들리고 있었다

짤린 혀를 날름거리고 싶어서


오래도록 창문을 바라보고 있으니

오래된 창문이 다가와서는;

나에게 하나의 상처가 있다면

하나의 창문은 하나의 상처

이 세상 어디에 오래된 상처가 있다면

오래된 창문은 오래된 상처!


(현대시세계 1992 가을)




감상 : 보는 것은 아픔이다. 보이지 않으면, 아프지도 않는 법.


'문학 > 좋은 한국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사 1 - 조지훈  (0) 2015.02.08
아내 - 윤대현  (0) 2015.02.08
목수 장씨 - 이원백  (0) 2015.02.05
교정 보는 여자 - 김기택  (0) 2015.02.05
나는 개를 키워온 게 아닌가 - 최준  (0) 2015.02.05
Posted by 돌잠
,

목수 장씨

                                                                                           이원백




교회의 빨간 십자가가 하나 둘 셋…… 달궈진 인두처럼, 돌아누운 하늘의 덤덤한 등짝을 조용히 고문하고 있는 밤 그 사이로 조금 멀리 보이는 이단의 십자가인 양 외롭게 녹십자를 이고 있는 강동성모병원 삼층 입원실엔 공사장 비계에 매달려 못질을 하다가 실족해 목과 한쪽 다리를 다친 목수 장씨가 누워 있다 관뚜꼉을 닫을 때꺼정은 장담 못할 것이 바로 우리네 인생이라며 병문안 온 사람들을 오히려 위로했다는 장씨는 한달 가까이 그곳에서 닳아빠진 대패처럼 누워 있다 나머지 두 다리는 멀쩡하니 안심하라고 옆에서 눈물 찍고 있는 아내의 손을 잡으며 다른 손으로는 풍뎅이 등딱지 같은 성경책을 꼭 쥐더라나 장씨를 만나고 온 사람들은 입을 모아 죽은 나무 깍아먹고 사는 목수라 부자는 못되어도 제 둥지만큼은 알아서 타고날 줄 알았는데 방세가 밀려 곧 쫓겨날 판이라며 애석해 했다 오늘도 초록빛 십자가 밑에서 물음표로 누운 몸으로 성경책을 읽고 있을 장씨가 문득 떠오른다 인두자국 같은 달만 퀭한 낯빛으로 떠있는 이밤에


(현대시세계, 1992, 가을)




감상 : 빨간 십자가는 밤을 고문하고, 이단의 초록 십자가 밑에 물음표로 누워있는 목수 장씨.

 

'문학 > 좋은 한국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내 - 윤대현  (0) 2015.02.08
오래된 창문 - 윤대현  (0) 2015.02.08
교정 보는 여자 - 김기택  (0) 2015.02.05
나는 개를 키워온 게 아닌가 - 최준  (0) 2015.02.05
풍적 3 - 장석남  (0) 2015.02.05
Posted by 돌잠
,

교정 보는 여자

                                                                                         김기택




그녀의 눈으로 끊임없이 글자들이 지나간다. 책상 위에 휴지통에 바닥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고 그녀는 종일 빠지고 넘어져 잘못된 글자들을 골라내어 제자리에 앉혀 준다. 글자들은 모래알처럼 많고 모래알처럼 딱딱하다. 그녀의 눈 속에 촘촘하게 박힌다. 뜨겁고 눈부신 태양의 조명 아래 모래알 가득한 눈을 껌벅거리며 그녀는 낙타처럼 글자의 사막을 지나간다. 가끔 눈이 너무 아프면 잠시 감아 보기도 한다. 글자들은 눈알에 깊이 음각되어, 감은 눈에 더 선명하게 나타난다. 그러면 그녀는 곧 음각된 글자들을 손등으로 꾹꾹 누르고 다시 눈을 열어 글자 속으로 들어간다.


이윽고 교정지 위로 어둠이 내린다. 그녀는 넓고 두툼한 어둠으로 글자들을 덮는다. 모래상처가 난 눈을 감는다. 눈물이 가만히 상처들을 만져 본다. 상처가 조금씩 소스라치며 씻긴다. 이윽고 글자들은 어둠의 두툼함 속에 묻히고 그녀의 눈은 편안해진다. 그녀는 손바닥에 닿는 어둠을 더듬더듬 만져 본다. 오래 오래 그 감촉들을 음미해 본다. 손가락 끝은 단 맛을 모르지요. 향긋한 냄새와 혀끝의 짜릿함도 모르지요. 하지만 낡은 표현의 우둘두툴한 편안함은 더 잘 안답니다. 허름한 진동의 온기와 기침 속에서 떨리는 등뼈의 정다운 울림은 더 잘 안답니다.


말 속에 말들이 있다. 손가락 끝에서 만져졌던 말은 가슴에 와서 작은 누룩 속에 들어 있는 빵처럼 크고 둘글어진다. 눈에서 녹아 가슴에 내린 글자의 상처들을 동그랗게 싸고 부풀어 오르는 말의 향기들. 숨쉴 때마다 그녀의 부푼 가슴에서는 빵 굽는 냄새가 난다.


(현대시세계, 1992, 가을)




감상 : 말 속의 말이 교정 보는 여자 속에 들어가 빵으로 구워진다고?


'문학 > 좋은 한국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래된 창문 - 윤대현  (0) 2015.02.08
목수 장씨 - 이원백  (0) 2015.02.05
나는 개를 키워온 게 아닌가 - 최준  (0) 2015.02.05
풍적 3 - 장석남  (0) 2015.02.05
배호 3 - 장석남  (0) 2015.02.05
Posted by 돌잠
,

나는 개를 키워온 게 아닌가 

                                                         최준




나는 스물여섯 해 동안

개를 키워온 게 아닌가

지저분한 개를

배때기에 벼룩이 스물거리는 개를

사람의 똥도 미쳐서 핥아먹는 개를

잡아먹어도 아깝지 않은 개를

아직 이름 지어주지 않은 개를

개를 닮은 개를

날들만 집어삼켜 거대해진 개를

패배주의자인 개를

그러나 어쩌지 못하고

성욕처럼 숨겨서 키워온 것 아닌가

밤이면 적의로 온몸이 가려운 개를




감상 : 1991년 발표된 이후로 쭈욱 감상하여 온 시인데, 이제 20여년이 더 지난 지금 그동안의 '날들만 집어삼켜 거대해진' 나를 돌아보며, 이 시의 진면목이 더욱 느껴진다.


'문학 > 좋은 한국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목수 장씨 - 이원백  (0) 2015.02.05
교정 보는 여자 - 김기택  (0) 2015.02.05
풍적 3 - 장석남  (0) 2015.02.05
배호 3 - 장석남  (0) 2015.02.05
겨울 나그네 - 오규원  (0) 2012.11.24
Posted by 돌잠
,

風笛·3 

- 경포                                         장석남




바닷가에 가

바닷가에 놓아둔다

소나무숲은 마음속에 있다


어둔 시간이 와 있다

가슴에서 누군가 살림을 하고

작은 시냇가를 건너가는 나무다리

지나가면, 솎아냈던 슬픔들이 삐걱삐걱

알은체를 한다


나는 바닷가가 되어 있고

소나무 숲은 육신 가득 수런거린다.




감상 : 삐걱이는 나무다리에서 어떻게 지워진 슬픔들을 상기시킬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욱신 거리는 삭신'을 또한 어떻게 '육신' 속에 접어 넣은 것일까? 놀랍기 그지없다. 


'문학 > 좋은 한국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정 보는 여자 - 김기택  (0) 2015.02.05
나는 개를 키워온 게 아닌가 - 최준  (0) 2015.02.05
배호 3 - 장석남  (0) 2015.02.05
겨울 나그네 - 오규원  (0) 2012.11.24
기념식수 - 이문재  (0) 2012.11.21
Posted by 돌잠
,

배호 3

- 눈이 오는 건 그녀가 내게 오기 때문이야                       장석남




신촌 크리스탈 백화점 앞에서 눈을 맞는다

눈이 오니까 그녀는 지금

눈길을 오리라

그녀 뒤의 발자국을 눈은 지우리라

자꾸 눈발은 등을 민다 그녀는

등을 밀리며 오리라 리어카 스피커에서

한 생애가 쏟아져나와

쉽게 살얼음이 되는 것 바라보며

사람들은 찬 이마와 머리칼을 데리고

어디로 가나 그녀는 지금

손아귀에 깊은 골짜기를 쥐고 오리라

눈길을 오며 그녀는 아이를 가지리라

재개봉 영화 간판을 올리며 눈발 속의 한 인부가

흑백 화면처럼 저녁을 가린다

강화버스 쪽으로 골목 하나 사라지고

그 자리에 적막한 불빛을 물고

강화버스가 두런두런 들어선다

골짜기 내게 가까와 어깨에 묻은 눈을 털고

말없이 손을 잡고 나는 

그녀에게 入山한다

눈길을 다시 가며 그녀는 호두나무꽃 같은

아이를 가지리라




감상 : 강화버스는 강화도로 가는 버스이다. 시인은 섬 출신이어서 강화버스가 익숙한 보통명사로 느껴진 모양이다. 배호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좋아한 가수이다. 정작 나는 잘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 시를 감상하는 한 꼭지를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배호는 사랑 노래를 잘 부른 가수가 아니었을까? 이 시의 압권은 '그녀에게 入山한다' 이다. 그 다음 두 행은 사족이 아니었을까? '흑백 화면처럼 저녁을 가린다' 에선 기형도의 [안개]가 연상된다.


'문학 > 좋은 한국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개를 키워온 게 아닌가 - 최준  (0) 2015.02.05
풍적 3 - 장석남  (0) 2015.02.05
겨울 나그네 - 오규원  (0) 2012.11.24
기념식수 - 이문재  (0) 2012.11.21
묘지송 - 박두진  (0) 2012.11.21
Posted by 돌잠
,

겨울 나그네  

                                   오규원

 

 

 

지난 겨울도 나의 발은

발가락 사이 그 차가운 겨울을

딛고 있었다.

아무데서나

心臟을 놓고

기웃둥, 기웃둥 消滅을

딛고 있었다.

 

그 곁에서

계절은 歸路를 덮고 있었다.

母音을 분분히 싸고도는

認識의 나무들이

그냥

서서 하루를 이고 있었다.

 

지난 겨울도 이번 겨울과

同一했다.

겨울을 밟고 선 내 곁에서

同一했다.

마음할 수 없는 사랑이며, 사랑......

內外들의 사랑을 울고 있는 비둘기

따스한 날을 쪼고 있는 곁에서

同一했다.

 

모든 나는 왜 理由를 모를까.

어디서나 기웃둥, 기웃둥 하며

나는 獲得을 딛고

발은 消滅을 딛고 있었다.

 

끝없는 祝福.

떨어진 것은 恨대로 다 떨어지고

그 밑에서 무게를 받는 日月이여.

모두 떨어져 엄숙히 쌓인 위에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발자국이 하나씩 남는다.

 

손은 必要를 저으며 떨어져나가고.

손은 必要를 저으며 떨어져나가고.

 

서서 作別을 지지하는 발

발가락 사이 이 차가운 겨울을

부수며

무엇인가 아낌없이 주어버리며

오늘도 딛고 있다.

 

바람을 흔들며 선 古木 밑

죽은 言語들이 히죽히죽 하얗게 웃고 있는

겨울을,

첨탑에서 安息日을 우는 鐘이

얼어서 얼어서 들려오는

겨울을.

 

이번 겨울도 나의 발은

기웃둥, 기웃둥 消滅을 딛고.

日月이 부서지는 소리

그 밑 누군가가 무게를 받들고......

 


 

감상 : 언어의 연금술!!! 觀念語들이 겨울과 나무에 매달려 기웃둥, 기웃둥 얼어서 부서져 내린다.


'문학 > 좋은 한국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풍적 3 - 장석남  (0) 2015.02.05
배호 3 - 장석남  (0) 2015.02.05
기념식수 - 이문재  (0) 2012.11.21
묘지송 - 박두진  (0) 2012.11.21
목포항 - 김선우  (0) 2012.11.18
Posted by 돌잠
,

기념식수 

                                                                    이문재

 

 

 

형수가 죽었다

나는 그 아이들을 데리고 감자를 구워 소풍을 간다.

며칠 전에 내린 비로 개구리들은 땅의 얇은

천정을 열고 작년의 땅 위를 지나고 있다

아이들은 아직 그 사실을 모르고 있으므로

교외선 유리창에 좋아라고 매달려 있다.

나무들이 가지마다 가장 넓은 나뭇잎을 준비하러

분주하게 오르내린다

영혼은 온몸을 떠나 모래내 하늘을

출렁이고 출렁거리고 그 맑은 영혼의 갈피

갈피에서 삼월의 햇빛은 굴러 떨어진다.

아이들과 감자를 구워 먹으며 나는 일부러

어린왕자의 이야기며 안델센의 추운 바다며

모래사막에 사는 들개의 한살이를 말해 주었지만

너희들이 이 산자락 그 뿌리까지 뒤져본다 하여도

이 오후의 보물찾기는

또한 저문 강물을 건너야 하는 귀가길은

무슨 음악으로 어루만져 주어야 하는가

형수가 죽었다

아이들은 너무 크다고 마다 했지만

나는 너희 엄마를 닮은 은수원사시나무 한 그루를

너희들이 노래부르며

파놓은 푸른 구덩이에 묻는다.

교외선의 끝 철길은 햇빛

철철 흘러넘치는 구릉지대를 지나 노을로 이어지고

내 눈물 반대쪽으로

날개도 흔들지 않고 날아가는 것은

무한정 날아가고 있는 것은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께] 민음)

 

 

 

감상 : 감동 없이 읽기 어려운 시, 마른 눈물은 가슴 속에 고이는데... '아이들은 아직 그 사실을 모르고 있으므로' 시인은 '눈물 반대쪽으로' 애써 먼 하늘을 바라본다.

 

'문학 > 좋은 한국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배호 3 - 장석남  (0) 2015.02.05
겨울 나그네 - 오규원  (0) 2012.11.24
묘지송 - 박두진  (0) 2012.11.21
목포항 - 김선우  (0) 2012.11.18
아내 - 윤대현  (0) 2012.11.17
Posted by 돌잠
,

묘지송(墓地頌)   

                                                                     박두진

 

 

 

북망(北邙)이래도 금잔디 기름진데 동그란 무덤들 외롭지 않으이.

 

무덤 속 어둠에 하이얀 촉루(髑髏)가 빛나리, 향기로운 주검의 내도 풍기리.

 

살아서 살던 주검 죽었으매 이내 안 서럽고 언제 무덤 속 화안히 비춰줄 그런 태양만이 그리우리.

 

금잔디 사이 할미꽃도 피었고, 삐이삐이 배 뱃종 뱃종! 멧새들도 우는데, 봄볕 포근한 무덤에 주검들이 누웠네.

 

 


감상 : 산위 외딴 곳의 돌보지 않는 무덤을 무슨 공원의 동산처럼 그렸다. 따사로운 햇볕을 쬐는 기분이다. 


'문학 > 좋은 한국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울 나그네 - 오규원  (0) 2012.11.24
기념식수 - 이문재  (0) 2012.11.21
목포항 - 김선우  (0) 2012.11.18
아내 - 윤대현  (0) 2012.11.17
자전 III - 강은교  (0) 2012.11.16
Posted by 돌잠
,

목포항     

                                       김선우 

 

 


돌아가야 할 때가 있다

막배 떠난 항구의 스산함 때문이 아니라

대기실에 쪼그려 앉은 노파의 복숭아 때문에

짓무르고 다친 것들이 안쓰러워

애써 빛깔 좋은 과육을 고르다가

내 몸속의 상처 덧날 때가 있다

 

먼곳을 돌아온 열매여

보이는 상처만 상처가 아니어서

아직 푸른 생애의 안뜰 이토록 비릿한가

 

손가락을 더듬어 심장을 찾는다

가끔씩 검불처럼 떨어지는 살비늘

고동소리 들렸던가, 사랑했던가

가슴팎에 수십 개 바늘을 꽂고도

상처가 상처인줄 모르는 제웅처럼

피 한방울 후련하게 흘려보지 못하고

휘적휘적 가고 또 오는 목포항

 

아무도 사랑하지 못해 아프기보다는

열렬히 사랑하다 버림받기를

 

떠나간 막배가 내 몸속으로 들어온다




감상 :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구가 아닐까여, 목포항은......

 

'문학 > 좋은 한국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울 나그네 - 오규원  (0) 2012.11.24
기념식수 - 이문재  (0) 2012.11.21
묘지송 - 박두진  (0) 2012.11.21
아내 - 윤대현  (0) 2012.11.17
자전 III - 강은교  (0) 2012.11.16
Posted by 돌잠
,

아내                                                         

                                                윤대현

 


 

아내의 한 끝은 아내이다 거기서 아내는 아내의 초상을 그린다

나는 아내가 휘두르는 채찍을 휘두른다

 

가끔 아내는 아내의 초상보다 무겁게 침묵한다

나는 차마 하지는 말아야 할 말을 느낀다

아내는 아내의 외로운 파수꾼이다

 

아내는 아내의 초상을 그리다가 지운다 아내의 또 다른 한 끝에서 아내는 여행을 떠난다

아내의 여행은 아내를 위하여

아내가 내리는 곳마다 아내를 떠난다

길게 채찍을 휘두르며 기자는 아내를 타고 간다

 

(현대시세계 92년 가을호)

 



감상 :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시일 듯......


'문학 > 좋은 한국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울 나그네 - 오규원  (0) 2012.11.24
기념식수 - 이문재  (0) 2012.11.21
묘지송 - 박두진  (0) 2012.11.21
목포항 - 김선우  (0) 2012.11.18
자전 III - 강은교  (0) 2012.11.16
Posted by 돌잠
,

自轉 III            

                                            강은교

 

 

 

문(門)을 열면 모든 길이 일어선다.

새벽에 높이 쌓인 집들은 흔들리고

문득 달려나와 빈 가지에 걸리는

수세기(數世紀) 낡은 햇빛들

사람들은 굴뚝마다 연기(煙氣)를 갈아 꽂는다.

길이 많아서 길을 잃어버리고

늦게 깬 바람이 서둘고 있구나.

작은 새들은

신경(神經)의 담너머 기웃거리거나

마을의 반대쪽으로 사라지고

핏줄 속에는 어제 마신 비

출렁이는 살의

흐린 신발소리

풀잎이 제가 입은 옷을 전부 벗어

맑은 하늘을 향해 던진다.

 

문(門)을 열면 모든 길을 달려가는

한 사람의 시야(視野)

허공(虛空)에 투신하는 외로운 연기(煙氣)들

길은 일어서서 진종일(盡終日) 나붓기고

꽃밭을 나온 사과 몇 알이

폐허(廢虛)로 가는 길을 묻고 있다.

 

([풀잎] 민음 74)

 

 


감상 : 한국 순수 서정시의 계보(공력, Skill, Image)가 느껴지는 시입니다.

 


'문학 > 좋은 한국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울 나그네 - 오규원  (0) 2012.11.24
기념식수 - 이문재  (0) 2012.11.21
묘지송 - 박두진  (0) 2012.11.21
목포항 - 김선우  (0) 2012.11.18
아내 - 윤대현  (0) 2012.11.17
Posted by 돌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