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 장씨

                                                                                           이원백




교회의 빨간 십자가가 하나 둘 셋…… 달궈진 인두처럼, 돌아누운 하늘의 덤덤한 등짝을 조용히 고문하고 있는 밤 그 사이로 조금 멀리 보이는 이단의 십자가인 양 외롭게 녹십자를 이고 있는 강동성모병원 삼층 입원실엔 공사장 비계에 매달려 못질을 하다가 실족해 목과 한쪽 다리를 다친 목수 장씨가 누워 있다 관뚜꼉을 닫을 때꺼정은 장담 못할 것이 바로 우리네 인생이라며 병문안 온 사람들을 오히려 위로했다는 장씨는 한달 가까이 그곳에서 닳아빠진 대패처럼 누워 있다 나머지 두 다리는 멀쩡하니 안심하라고 옆에서 눈물 찍고 있는 아내의 손을 잡으며 다른 손으로는 풍뎅이 등딱지 같은 성경책을 꼭 쥐더라나 장씨를 만나고 온 사람들은 입을 모아 죽은 나무 깍아먹고 사는 목수라 부자는 못되어도 제 둥지만큼은 알아서 타고날 줄 알았는데 방세가 밀려 곧 쫓겨날 판이라며 애석해 했다 오늘도 초록빛 십자가 밑에서 물음표로 누운 몸으로 성경책을 읽고 있을 장씨가 문득 떠오른다 인두자국 같은 달만 퀭한 낯빛으로 떠있는 이밤에


(현대시세계, 1992, 가을)




감상 : 빨간 십자가는 밤을 고문하고, 이단의 초록 십자가 밑에 물음표로 누워있는 목수 장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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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돌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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