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개를 키워온 게 아닌가 

                                                         최준




나는 스물여섯 해 동안

개를 키워온 게 아닌가

지저분한 개를

배때기에 벼룩이 스물거리는 개를

사람의 똥도 미쳐서 핥아먹는 개를

잡아먹어도 아깝지 않은 개를

아직 이름 지어주지 않은 개를

개를 닮은 개를

날들만 집어삼켜 거대해진 개를

패배주의자인 개를

그러나 어쩌지 못하고

성욕처럼 숨겨서 키워온 것 아닌가

밤이면 적의로 온몸이 가려운 개를




감상 : 1991년 발표된 이후로 쭈욱 감상하여 온 시인데, 이제 20여년이 더 지난 지금 그동안의 '날들만 집어삼켜 거대해진' 나를 돌아보며, 이 시의 진면목이 더욱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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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돌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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