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어찌

 

과거 중학교 교과서... 글 가운데 양주동 선생의 ‘몇 어찌’라는 수필이 있다. 


한적 공부만 해 왔던 선생이... 보게 되는...‘기괴한 말’가운데 하나가 기하(幾何)라는 단어였다. 


‘몇 어찌’ 가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수학 선생은 이렇게 설명한다. 


“가로되 영어의 ‘지오메트리(측지술)를 중국 명나라 말기의 서광계가 중국어로 옮길 때 이 말에서 ‘지오(땅)를 따서 지허(기하의 중국음)라 음역한 것인데 이를 우리는 우리 한자음을 따라 ‘기하’라 하게 된 것이다” 


우리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도 모두 기하라는 말은 지오메트리(geometry)의 역어로 알고 있다.

과연 그럴까? 원로 경제학자이신 정기준 선생께서... 수학학회지에 발표하셨다.


1607년 마테오 리치와 서광계는 유클리드의 ‘Elementa’를 ‘幾何原本’이라는 책이름으로 번역했는데 제 1권의 머리에 “무릇 역법 지리 악률 산장 기예 공교 등 여러가지 를 다루는 분야는 모두 十府依賴할 때 그 가운데 기하부에 속한다”는 아리송한 말을 써놓았다. 


십부라는 것은 곧 아리스토텔레스의 10카테고리이며 그 가운데 두 번째 것이 수량카테고리이다 수량카테고리는 그리스어로 peson 인데 이 단어의 의미는 영어로 how much 이고 이를 직역하면 기하(幾何 중국어에서 ‘얼마’의 뜻으로 쓰이는 부사이다) 가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나 저울로 재서 알 수 있는 連續數量과 세어서 알 수 있는 離散數量이 모두 이 카테고리에 속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리치와 서광계는 이 두 수량을 각각 도와 수라는 단어로 표현한 것이다. 


정리하면 기하라는 단어는 지오메트리의 음역이 아니라 도와 수를 다루는 모든 분야 곧 수학 일반을 가르킨다. 


우리가 400년동안 당연시 했던 오해가 드디어 풀린 것이다. 이런 일들이 그 외에도 얼마나 많이 있을까.           (주경철, 서울대 교수 서양 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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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생각 :

외래문명이 들어올 때는 번역의 문제가 생긴다. 그리고 오해와 착각 속에서 또 문명은 새로운 옷을 입는다. 그 기막힌 사례 중의 하나.

낭만은 단순히 roman 의 음역에 불과하나 로마적이란 말과 낭만 이 우리네 심상에 닿는 느낌은 얼마나 다른가? 그런데 또 로만이 아니라 로망 또는 로맨틱 이라고 쓰면 또 느낌이 달라진다. 말은 글이기 이전에 마음에 울리는 소리이다.

연속수량은 도(度)이고, 이산수량은 수(數)라고 마테오리치와 서광계가 정의했네요... 통계를 공부할 때, 재미있게 얘기해볼 수 있는 개념의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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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돌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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