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현대사회를 '위험 사회'로 명명한 것이 이미 30년 전인 1986년이었다. 그때만 해도... 민주냐 반민주냐라는... 이분법이... 휩쓸었다... '감시 사회' '과로 사회' '모멸감 사회' '낭비 사회' 등 책으로 출간된 것만 20여 가지에 이른다... 재독(在獨) 철하자 한병철의 '피로 사회'(2013년)와 미국 사회학자 스테판 메스트로비치의 '탈감정 사회'(2014)였다.

 

그래서 굳이 한가지를 덧붙이자면 '공분(公憤) 증발 사회'로서의 한국이다... 선뜻 공분하며 따라가기에는 뭔가 꺼림칙한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이다... 그 대부분이 거짓으로 판명되었지만 그에 대한 진실한 고백은 아직까지도 없다. 그후 여간해서 사람들은 공분을 품거나 표시하지 않는다. 특정사건의 정쟁화... 공식을 많은 사람이 이미 간파했기 때문이다.

 

... 공분이 어떻게 정쟁화되고 그 결과 처음에 들끓었던 공분이 어떻게 증발해버렸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이것이 어느 순간 사고의 재발을 막고 좀 더 안전한 사회로 나아감으로써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의 넋을 위로하는 쪽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공자의 말에서... '애이불상(哀而不傷)'. 슬퍼하되 몸이 상하는 지경까지 이르러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여기에 진실과 위선의 경계가 있다...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앞으로 공분이 증발해버린 공동체에서 그냥저냥 요행에 자신을 내맡긴  채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조선일보, 2015. 04. 23, 이한우 문화부장)

 

Posted by 돌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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